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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마당/정보지<시민교육>

시민교육2호_ 특집/ 배움이 꽃피는 마포(강대중)


민과 관이 협력하여 배움이 꽃피는 마포

 
   글 강대중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사진 가림토 


서울시 마포구는 오래된 도시다. 조선시대 지금의 마포구 일대에 있던 마포나루, 서강나루, 양화나루는 한강을 거슬러 수도 한양으로 물자를 실어 나르던 어선과 상선들의 종착지였다. 삼남지방은 물론 중국을 비롯한 외국의 물건들이 한양으로 들어오던 길목이었던 마포는 따라서 늘 새로움이 흘러넘치는 곳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다양한 물자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목과 통로인 시장에서 정보가 유통되고 새로운 지식이 생성된다. 그래서 우리는 도시 문명의 형성과 발전을 얘기하며 시장을 떼어놓을 수 없다. 시장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귀동냥하던 촌로들은 물론 생존과 생활의 터전을 잡고 장사의 이치를 터득하던 젊은 영혼들과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던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배움터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혹자는 시장 바닥이 아닌 서책 속에서 큰 배움을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서책이란 것도 실은 시장을 통하지 않고는 얻을 길이 있을까?
예로부터 지식과 정보가 흐르던 길목에 있었기 때문일까, 오늘날 마포는 국내에서 출판사들이 가장 많이 자리 잡은 곳이다. 혹자는 마포 일대에 일 년에 적어도 한두 권 이상의 책을 내는 출판사가 700개는 될 거라고 한다. 파주에 대단위 출판단지가 생긴 지 꽤 됐지만 여전히 마포는 국내 출판산업의 메카이다. 사통팔달의 교통망과 저렴한 사무실 비용 등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마포에 출판사가 많은 까닭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합리성이 통할 곳은 마포 이외에도 많을 것이다. 내 눈에는 마포라는 지역이 가진 배움터 기운이 범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주민센터에서 꽃피는 인문학 - 마포열린강좌

난지도 쓰레기장이 하늘공원으로 면모를 일신하고, 상암동에 월드컵 경기장과 디지털미디어센터가 자리 잡고, 마포대교를 건너 종로로 나아가는 공덕동과 도화동 부근에 높은 고층 빌딩과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마포는 쾌적한 현대적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마포의 외양적 발전 속에 옛날 말로 동사무소, 요즘 말로 주민센터에서는 실로 범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주민센터에서 꽃피는 인문학 - 마포열린강좌’라는 간판이 걸린 지가 벌써 3년째에 접어든 것이다.
2006년 초등학교 교장을 퇴직하고 일 년 간 큰 병치레를 한 박영임(마포구 중동) 씨가 노년의 활력을 되찾은 계기는 ‘마포열린강좌’를 만나게 되면서였다. 박 씨는 병석에서 일어난 뒤 무언가 배워야 삶의 재미가 생겨날 것 같아, 여기 저기 강좌를 기웃거렸다. 초등교사로 음악 과목에 특별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예술 분야에 관심이 컸다. 그래서 광화문과 강남의 유명한 공연장과 사설 기관에서 운영하는 예술 강좌에 등록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석 달 하는 강좌의 수강료가 30~40만 원에 달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신축된 마포구청 지하 평생학습센터에서 여는 인문학 강좌 소식을 접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서 열리는 이 강좌는 수강료도 2만 원에 불과했다. 서양고전음악과 미술사 공부로 작년 일 년을 행복하게 보낸 박 씨는 올해는 작심하고 매주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사흘을 인문학 공부로 보내고 있다. 화요일 저녁과 수요일 낮에는 서양철학과 오페라를, 목요일 아침에는 한시와 고서에 담긴 사자성어를 통해 중국 역사를 배우러 마포구청으로, 목요일 저녁에는 지하철을 타고 서강동 주민센터에 가서 심리학을 공부한다. “아현동 주민센터에서 하는 현대미술 리얼리티 강좌나 염리동 주민센터의 문화로 보는 세계사 강좌도 꼭 듣고 싶은데, 시간이 겹쳐서 들을 수가 없어요.” 박 씨의 행복한 고민이다.
구청에서 운행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마포열린강좌’를 들으러 다니는 가정주부 이해경(마포구 상암동)씨도 “알게 되면 더 많이 보인다더니 공부할수록 뭔가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되고, 전보다 책도 더 많이 읽게 된다.”고 한다.
지난 2006년 가을, 유명 대학의 인문대 교수들이 인문학이 위기라며 성명서를 내고, 정부에서 이런저런 대책들을 내놓은 적이 있다. 몇 년이 흐른 지금 당시 회자되던 인문학 위기론 목소리는 오간 데 없이 잦아들었다. 그렇다고 대학 강단의 인문학이 위기로부터 탈출해 재도약하고 있는 것일까. 학생들은 여전히 취업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소위 ‘스펙’ 쌓기로 내몰리고 각종 고시가 최선의 졸업 대책이라는 풍조가 완화된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강단의 인문학 형편이 더 나아졌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대학 바깥에서는 전에 없던 일이 생겨나고 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필부필부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이 인문학 공부로 삶의 희망을 찾도록 돕자는 한국판 클레멘트 코스들이 여기저기서 시도되고 있다. 시민단체 인권연대는 교도소를 찾아가 재소자들에게 시와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여러 대학들도 주민들을 위한 인문학 공개강좌를 열며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성미산 마을 축제(사진: 가림토)